![]() ▲ 최은영(현 별하랑 국어학원장/전 어린이책 기획편집자) |
초등 국어, ‘문제집’이 아닌 ‘책’을 펼쳐야 할 때
“뭘 써야 해요?”
“뭘 얘기해야 해요?”
초등 아이들이 자주 건네는 질문 중 하나다. 왜 그럴까? 바로 ‘진짜’ 생각을 하지 못해서이다. 이 말인즉슨 아이들이 ‘가짜’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가짜 생각은 내 생각이 아닌데 내가 생각한 것처럼 그럴듯하게 꾸며낸 것들이다. 가짜 생각을 하는 아이들은 대체로 생각을 묻는 질문에도 ‘정답’이 있을 것이라 오해한다. 질문자의 의도에 맞는 정답을 찾으려 하니, 뭘 얘기해야 하고 뭘 써야 할지 막막해져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한마디 정도 하거나 한두 문장 정도만 쓰고 생각을 끝내버린다.
아이들의 문해력이 갈수록 낮아지면서 각종 국어 문제집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런 것까지 ‘문제집화(化)’할 필요가 있나 싶은 것들도 말이다. 그러면서 수학, 영어 등 다른 교과 영역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어휘력을 챙겨야 한다는 둥, 킬러 문항을 풀려면 초등부터 독해 연습을 해야 한다는 둥 현혹적인 말로 초등 부모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초조해진 부모들은 서점으로 달려가 어휘부터 독해, 심지어 문법과 작문 문제집까지 사서 자녀에게 건넨다. 영수 문제집으로도 모자라 국어까지 문제집을 받은 아이들은 정답만을 쏙쏙 찾아내느라 ‘진짜’ 생각을 할 기회를 박탈당하였다.
국어는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전 영역이 서로 균형 있게 길러져야 하는 과목이다. 따라서 어휘, 독해, 문법, 글쓰기 등을 따로 떼어서 공부해서는 안 된다. 초등 시기만큼은 국어 문제집에 너무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어릴 때부터 문제집 푸는 것에 시간을 쏟는 아이들을 많이 봤다. 그런 아이들은 문제는 잘 풀지언정 생각을 말하거나 쓰는 것은 매우 힘들어했다. 글쓰기 주제를 제시하면, 주제에 맞는 정답을 찾고 쓰는 데에 급급한 나머지, 생각의 기승전결 없이 곧바로 ‘결(론)’만 성급하게 써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뭘 해야 할까? 역시나 ‘독서’다. 독서야말로 ‘진짜’ 생각을 하도록 이끈다.
책이면 어떤 것이든 좋다. 다만 독서의 결과물, 즉 아웃풋에 너무 집착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해당 책에 대한 워크북을 풀어야 한다거나, 감상문이나 논설문을 반드시 써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대신 아이가 책을 읽었다면 해당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을 반드시 갖기 권한다. 예컨대 ‘지구 온난화’에 대한 책이라면, 주변에서 지구 온난화를 일으키는 행동을 찾거나 지구 온난화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 방법들을 이야기 나누는 것이다. 주제가 어렵다면 책 속 문장이나 어휘도 좋다. 예를 들어 “옛날 옛적에 고지식하고 어리숙한 양반이 살았어.”라는 문장이 있다면, ‘고지식하다’와 ‘어리숙하다’에 주목하여 인물의 성격을 유추한다든지 우리 주변에 해당 인물이 있는지 찾아보는 것이다. 실제로 초등 고학년과 중학생에게 ‘고지식하다’를 물었는데, 그 뜻을 ‘지식이 높아 똑똑한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어서 놀랐던 적이 있다. 거창한 주제가 아니어도 좋으니 글귀 하나를 두고도 짧게나마 질문을 주고받고, 아이와 경험을 나눠보자. 그러다 보면 아이가 ‘진짜’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하게 될 것이다.
AI가 순식간에 정보를 찾고 글도 쓰는 시대다. 우리 아이들이 미래에 경쟁력을 갖추려면 ‘진짜’ 생각을 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한 번씩 “전 거기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는데요?”라고 퉁명스럽게 말하는 아이들을 마주할 때면, 가슴이 철렁 내리곤 한다. 미래 사회는 다섯 개 선택지 중에서 정답을 빠르게 잘 고르는, 소위 각종 시험에서 100점을 거두는 아이들을 바라지 않는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진짜’ 생각으로 세상을 꿰뚫고 세상을 설계해 나가는 인재를 진정으로 원할 것이다. 이때 ‘진짜’ 생각을 하도록 이끄는 것이 바로 독서다. 그러니 초등 시기만큼은 문제집이 아닌 ‘책’이 아이의 책상을 가득 채워야 하지 않을까?
















